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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삶을 살라, 10부 중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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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한 말은‍ 때로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피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그 행위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말란 거죠.‍ 최선을 다해 가능하면‍ 피하라는 뜻이에요.‍ 그냥 아무렇게나…‍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고‍ 최대한 피하란 말이에요.‍ 정말 피치 못할 때는‍ 큰 재앙을 피할 방법을‍ 생각하라는 거고요.‍ 그래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안 하는 게 가장 좋죠.‍ 그럼 괜찮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행위가‍ 실은 안 그렇기도 해요.‍ 그게 장자가 뜻한 바예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계속 읽어보죠.‍

『그러므로‍ 중도를 따르면‍ 몸을, 우리 육신을‍ 보전하고, 의무를 다할 수 있고‍ 더불어 부모를 봉양하고‍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이건 무슨 뜻인가요?‍ 우리 삶은 유한해요.‍ 물질은, 물질로 된 것들은‍ 오래 가지 않죠.‍ […]‍ 장자는 말하길‍ 이 육신, 이른바 육신의 두뇌를 써서‍ 영원하고 무한한 도를‍ 추구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즉 잘못된 방식으로‍ 찾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육신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야 하는 거죠.‍ 옷은 말할 것도 없고요.‍ […]‍

많은 사람들이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고, 다리를 꼬고 앉거나‍ 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과연 그럴까요?‍ 장자는 아니라고 하셨죠.‍ 내가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나를 나무라지 마세요.‍ 그분 말씀의 뜻은, 이 덧없는 육신으로는‍ 뭘 어떻게 해도‍ 영원한 도, 영원한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예요.‍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한다면‍ 그건 더 이상한 거죠. 해서‍ 더 부질없다고 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면, 선행을 했을 때, 남들이 알고 칭찬하지‍ 않도록 굳이 자랑하지‍ 않는 게 좋아요.‍ 에고가 더욱… (커지죠)‍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거나‍ 혐오스럽게 느끼는 일을‍ 해야만 하고‍ 피할 수 없을 경우에는,‍ 너무 큰 재앙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상책이죠.‍ 우리에겐 보존해야 할‍ 몸이 있기 때문이죠.‍

왜 이 덧없는 몸을‍ 보존해야 할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중도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몸이 없으면‍ 수행할 수 없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을‍ 시간도 없게 되니까요.‍ 그러니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 몸을‍ 잘 보존해야 해요.‍ 몸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며‍ 다리를 꼬고 앉는다고‍ 부처가 되는 것도 아녜요.‍ 마찬가지로‍ 선행을 한다고‍ 부처가 되는 게 아니죠.‍ 또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도를 이루거나 신과‍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분의 말씀은 그거예요.‍ 그래서 중도를‍ 수행해야 하는 거예요.‍ 공덕을 쌓으려고 일부러‍ 선행을 하지 말라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남들이나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길을‍ 생각해야 해요.‍ 예를 들어, 사회에서 소위‍ 악행이라고 하는 것들 중…‍

말하자면, 나를 예로 들어보죠…‍ 다른 예가 생각이 안 나서‍ 나 자신을 끌어들이는군요.‍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볼게요.‍ 예전에 내가 목욕하러 갈 때,‍ 여기에 천을 두르고‍ 어깨를 드러내거나 이쪽을‍ 조금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했죠.‍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죠.‍ 내가 그렇게 입고‍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면‍ 물론 부적절했겠죠.‍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 건‍ 산속, 강가에 있을‍ 때였어요.‍ 거긴 우리 제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수영하려면 옷을 좀‍ 덜 입어야 하잖아요.‍ 옷을 입은 채 강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죠.‍ 그래서 어쩌면 그 당시‍ 내 행동이 부적절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잘못한‍ 거라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내가 거리에서 그렇게 입고‍ 걸어 다니거나‍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다녀서‍, 운전자들이 한눈을 팔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면‍ 내가 잘못한 거죠.‍ 하지만 난 산속에 있었어요.‍ 기껏해야 유혹할 수 있는 건‍ 멧돼지주민 정도였죠.‍ 아니면 뱀주민이나‍ 독사주민이요.‍ 멧돼지주민 말이에요.‍ 그러니, 사람들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죠.‍ 그들 멧돼지주민이 나를‍ 비난한다면 모를까요.‍ 외부인들은 그럴 수 없었죠.‍

내가 어디를 가든 전부‍ 공개되니까요. 수많은‍ 제자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 때문에 모두가 알게 되죠.‍ 난 숨길 게 없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죠.‍ 난 산속에서 안거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었고‍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선 안 될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날 비난하며‍ 내가 『나쁘다』고 말했죠.‍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바로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또 사회에서 어떤 것은…‍ 우리는 훔치면 안 된다고‍ 말하죠. 나도 오계에서‍ 도둑질을 금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굶어 죽을 지경이고,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있고, 일자리도 없고, 모두에게‍ 외면당해서 할 수 없이‍ 훔쳤다면, 나는 그걸‍ 나쁘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나쁜 일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뭔가를 숨기고‍ 남들을 속이고‍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보시와 선행을 해요.‍ 사실 뒤에서는‍ 악행을 일삼으면서요.‍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속이지만‍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죠.‍ 그래요. 좋은지 나쁜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죠.‍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해야 돼요.‍ 늘 그게 좋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할 순 없어요.‍ 또 우리의 두 번째 계율이…‍ 아니면 다섯 번째 계율이‍ 『간음하지 말라』인데,‍ 아내나 남편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게‍ 문제와 괴로움을 일으키게‍ 되니까요. 그래서‍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마음속에 너무 많은‍ 갈등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될테니까요.‍ 아내 한 명만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프잖아요. (네)‍ 어리석은 사람만 두 번째, 세 번째 아내를 두겠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있는 거죠. 법을 위해‍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 상황에 따라 달라요.‍ 모든 일에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지만, 융통성을 발휘해서‍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해요.‍ 온 가족이‍ 굶어 죽을 판인데, 빵 한 조각 훔치는 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고의로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잠시 배를 채우고 몸을‍ 지탱하려고 그런 것뿐이죠.‍ 장차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면서 갚으면 되잖아요.‍ 빵 한 조각을 훔친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단지 계율에서‍ 좋다거나 나쁘다고 한‍ 것만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인지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장자도 나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나쁜 일을 할 때는‍ 큰 재앙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요.‍ 그런 뜻이에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소위 나쁜 일들도 세속적인‍ 눈으로 봤을 때 나쁜 거예요.‍ 신에게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 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모든 이가 무분별하게‍ 악행을 저지른다면, 즉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남의 아내를 빼앗고, 아내를‍ 두세 명씩 두고 그런다면‍ 너무 혼란스러워지겠죠.‍ 그래서 피할 수 있다면‍ 당연히 피해야 하는 거죠.‍ 그게 더 좋다는 걸 아니까‍ 가능한 한 피하는 거예요.‍ 그게 다예요.‍ 이 계율들을 지킨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건 아니에요.‍ 오계를 지키고‍ 비건식만 하는 걸로는‍ 수많은 겁이 지난다 해도‍ 부처가 되지 못해요.‍ 소주민들을 보세요.‍ 우리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잖아요.‍ 어릴 때부터 풀만 먹고‍ 사회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아요.‍ 풀만 먹죠.‍ 그들을 보세요. 우리보다‍ 낫지 않나요? (맞습니다)‍

알다시피, 어떤 사람이 설령 악행을 저질렀다 해도‍ 다음 날 깨어날 수 있어요.‍ 그럼 영적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 단정하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어떤 나쁜 사람이‍ 훔치고 살인한다고 해봐요.‍ 하지만 어쩌면 피해자들이‍ 전생에 그를 죽였거나 그의‍ 물건을 훔쳤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번 생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전생의 업에‍ 이끌려서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는 거죠.‍ 어쩌면 훔치거나 살인한 뒤에‍ 업이 소멸되어 그가 갑자기‍ 깨어나고 영적 수행을‍ 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누가 좋고, 나쁜지‍ 단정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날 따르며 배우게 되면,‍ 어떤 길이 가기가 더 쉽고‍ 크나큰 업장과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길인지‍ 알려줄 거예요.‍ 그건 미래를 위한 것이고, 과거는‍ 문제 삼지 않을 거예요.‍ 완전히 잊어버려도 돼요.‍ 미래에 또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만 않으면 돼요.‍ 또다시 피의 빚을 지고‍ 업을 초래한다면‍ 되돌아와야 하니까요.‍ 설령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 업보 때문에‍ 삶이 편안치 않을 거예요.‍ 원수들이 쫓아와 또다시‍ 우릴 죽일 거예요. 복수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그러니까 입문한 후에는‍ 앞으로 생길 업장과‍ 문제와 복잡한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계율을 지켜야 해요.‍ 하지만 계율을 지키는 것과‍ 비건 식단을 따르는 것이‍ 부처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아니에요. 비건이 되는 건‍ 모든 생명체를 하나로 보는‍ 우리 사랑의 표현인 거죠.‍ 모든 존재들이 하나이니‍ 동물주민을 죽이는 건‍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거예요.‍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어찌 완전해질 수 있겠어요?‍ 이건 완전한 도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중도를 수행하면, 장자의 말씀 대로‍ 소중한 인간의 몸도‍ 잘 보존할 수 있고‍ 부모님도‍ 봉양할 수 있으며, 삶의 의무를‍ 다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고, 때가 되어서‍ 떠날 때도‍ 적시에 떠날 수 있어요.‍ 너무 많은 문제도 없고, 너무 많은 재앙도 없고, 너무 많은 미움도 없고, 서로 죽이거나 위협하는‍ 일도 없이요. 그런 뜻이에요.‍ 장자가 하신 말씀이죠…‍ 동의하나요? (네) 그래요.‍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견해와 일치해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분을 좋아하는 거예요.‍ 전 세계가 그분을 알고 있죠.‍ 노자뿐만 아니라‍ 장자도 아주 유명해요.‍ 노자와 장자는‍ 중국의 정신이자‍ 세인들의 의지처예요.‍ 왜냐고요? 그분들의‍ 말씀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대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책들을‍ 수백만 번 읽는다 해도‍ 책은 여전히 책일 뿐이고‍ 자신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경전을 그런 식으로 읽어요.‍ 그래서 내가 그만‍ 읽으라고 하는 거예요.‍ 경전을 읽거나 외우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을‍ 거면 더는 외우지 마세요.‍ 녹음기처럼 외우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니면 앵무새처럼요.‍ 『중얼중얼중얼』‍ 전혀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경전을 외우는 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경전을 아무리 외워도‍ 부처가 될 수 없어요.‍ 향을 피우고‍ 불상에 절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부처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나무로 만든 불상에‍ 절하는 데 있는 게 아니고요.‍ 정말 아무 소용이 없어요.‍ 하지만 솔직한 충고에‍ 귀기울이긴 어렵죠. 다들‍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죠.‍ 듣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죠.‍ 난 거짓말은 못해요.‍ 오계 때문에요.‍ 난 오계를 지켜야 해서‍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내가 아는 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해요.‍ 들을지 말지는‍ 여러분의 선택이죠.‍ 듣고 싶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이해하지도 못한 채‍ 부처를 믿는 것은, 부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부처가 그저‍ 나무로 만든 불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죠. 『부처가 지상에‍ 내려오는 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의 통찰과 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부처가 되는 법을‍ 알려주시려 했다는 뜻이에요.‍ 성불을 못하면‍ 어떻게‍ 부처님의 지식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부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분께선 우리가‍ 부처가 되길 바라신 거예요.‍ 나무로 만든 불상에‍ 절하길 원하신 게 아니죠.‍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라면, 물론 그분께‍ 예를 갖춰야 했겠죠.‍ 그분을 우러러보고‍ 좋아하니까요.‍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를 표하는 거죠.‍ 부처님을 기리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건 괜찮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마찬가지예요.‍ 사진이 우리 부모님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진 앞에서 절하잖아요.‍ 부모님이 소중하니까요.‍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고‍ 공경하고‍ 존경하기 때문이죠.‍ 사진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상징하는 것이니,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 사진을 진짜‍ 부모님으로 여기면서‍ 온종일 마치 살아 계신‍ 부모님 대하듯 한다면‍ 잘못된 거 아닌가요? (네)‍ 그건 불효가 아닐까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요.‍ 부모님이 가셔야 할 곳에‍ 가셔서 공덕에 따라 천국에서‍ 쉬시도록 보내드리지‍ 않는 거니까요.‍ 종일 이곳에 붙잡아 놓고‍ 우릴 기다리시게 하고, 우리가‍ 보려고 여기 계시게 만들죠.‍ 우리가 이기적이어서 그래요.‍ 여기 계셨으면 하는 거죠.‍ 편히 쉬실 때가 됐다는 건‍ 생각하지 않고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처님께, 불상에‍ 절할 수도 있어요.‍ 그분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과거의 위대한‍ 깨달은 스승을 존경하는 건‍ 옳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 불상 자체가‍ 부처라고 고집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부처는 우리 내면에, 모든 중생 안에 거하시죠.‍ 나무로 된 불상이 아니라요.‍

사진: 『더 높이 오르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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