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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난 목적, 12부 중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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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주의 모든 행성을 볼 수는 없어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비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들은 존재하지만‍ 우리 눈이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있거든요. […]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천안이라고 부르는 부처의 눈을 사용하는 거죠.‍ 그걸 어떻게 사용할까요?‍‍ 이 눈은 어디 있을까요?‍ 아, 그게 이른바 깨달은‍ 스승들의 의무입니다.‍ 그들은 그 눈을 어디에서‍ 찾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줄 겁니다.‍

앞서 형제가 말했듯이‍ 진리를 성공적으로‍ 들으려면‍ 옳고 그름에‍ 관한 모든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부처님이나 신의‍ 지혜를 제외하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이해할 겁니다.‍ 때로 옳고 그름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입니다.‍ 신이나 부처의 궁극적인 진리 외에‍ 이 우주에 절대적인‍ 것은 없어요.‍ 아시다시피‍ 과학적 증명들도‍ 때로 100% 옳다가‍ 다음 날에는 틀릴 때가 있어요. 그렇죠?‍ 아니면 어떤 사람이‍ 다른 주장을 증명하고‍ 다른 실험을 하면 그것이 틀렸음을 봅니다.‍

몇 백 년 전,‍ 우리나라가 아직‍ 왕정에 있으며 뜨득 왕 통치할 때‍ 학식 높은 학자인‍ 응웬 쯔엉 또옥이‍ 프랑스 유학을 가도록 뽑혔습니다.‍ 여러분도 아는 얘기로‍, 이 세상의 상대성을‍ 증명하려고, 다시 말합니다.‍ 그렇게 왕은 응웬 쯔엉 또옥을 프랑스에‍ 유학 보냈습니다.‍ 그가 어울락(베트남)에‍ 돌아오자 이렇게‍ 보고했어요.‍ 『유럽인은‍ 매우 문명화되었고‍ 등불이 거꾸로 타지만‍ 기름은 쏟아지지 않습니다. 길 위를 다니는 수레는‍ 말이 끌 필요가 없습니다. 벽에서 물이 나옵니다』‍‍ 어울락(베트남)에는‍ 전에 없었던 놀라운 것들입니다. 어울락(베트남)은 기름등잔을 사용했으니까요. 방을 밝히려면 그걸 위로 세워 두어야 하죠. 어떻게 등잔이 거꾸로 탈 수 있나요?‍ 하지만 그건 전등이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런‍ 거꾸로 된 등을 봅니다.‍ 그러나‍ 응웬 쯔엉 또옥이‍ 이 사실을 보고하자,‍ 뜨득 왕은 믿지 못하고‍ 그를 참수하도록‍ 명했습니다.‍ 무슨 죄목이었을까요?‍ 왕에 대한 능멸이었죠.‍ 왕이 너무 어리석어‍ 원하는 대로 그를‍ 속일 수 있다고요.‍ 이는 가장 중한‍ 죄이기에 삼족을 멸할 수도 있어요!‍ 단지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해도 그의 3대를‍ 처형하거나 적어도 그는 죽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겠죠?‍‍ 그는 단지 증명 가능한‍ 것들을 말했을 뿐인데‍ 내가 천국과 지옥에 관해‍ 말하는 건 어떻겠어요.‍‍ 그래서‍ 태곳적부터‍ 깨달은 스승의‍ 목숨은 풍전등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요즘은 법이‍ 아주 엄격해요. 따라서 사람들의 신앙과‍ 신념을 최대한 보호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강연할 수 있어요.‍ 옛날, 예수님이 돌아다니며‍ 설교하던 시절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볼 수 없도록 비밀 장소에‍ 숨어서 모여야 했었죠.‍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느 시대에나‍ 진리를 밝힐 수 없는 곳은 항상 존재해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다』고 말하죠.‍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미국에 삽니다.‍ 인권도 존중받아요. 인간의 존엄성은 소중하죠.‍ 그래서 이 강당에 이렇게‍ 평화롭게 앉을 수 있지요. 우린 정말 복받았어요.‍

상황은 매일 변하고 있죠. 왜 그럴까요?‍‍ 영적 수행자들이‍ 있어서 세상이 점점‍ 밝아지고 있으니까요. 순회강연을‍ 더 많이 다닐수록‍ 세상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우리가 숨쉬기도 더 편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여기저기를 방문해달라고 초대하면 때론 피곤해서‍ 거절하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놀라운 이로움이 있음을‍ 느끼기에 육체적, 정신적 행복이나‍ 개인적 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괜찮아요. 힘닿는 데까지, 이 몸이 끝나고‍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사용할 겁니다. 그냥 몸을 버리면 됩니다. 아니면 뭘 하겠어요?‍ 이 세상은 혼잡하고‍ 한 사람의 육체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부서져야만 해요.‍ 아무리 최고의 차를‍ 가졌더라도 쉬지 않고‍ 너무 많이 달리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나사가 풀렸다』고 하죠. 나사요.

내 나사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좀 피곤해요. 그러니 가끔‍ 여러분이 내가 행할 수‍ 없는 걸 요구하고서‍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가령, 가끔 강연이나‍ 입문식 후에 나는 이미 정말 피곤한데 많은 사람이 여전히 날 개인적으로 보고 정을 나누고 손을 잡는 등등을 하고 싶어해요. 거절하면 기분 나빠하죠.‍ 하지만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누워야 하고 그래야 다음 날‍ 계속 일할 수 있어요. 따라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순 없습니다. 그런 것이죠.‍

이제 이 세상의‍ 문제를 말해볼까요. 왜 절대적인 게 없을까요?‍‍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쪽 구석만 볼 수 있고‍ 전체를 보지 못하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의 눈은, 최고의 시력을 가진‍ 사람도 기껏해야 수백 미터 앞만 봅니다. 앞을 보면 뒤를 볼 수 없고‍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볼 수 없으며‍ 오른쪽을 보면‍ 왼쪽을 볼 수 없지요. 이 세상에서 우리 시력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고‍ 아주 하찮다는 걸 알기에 충분하죠.‍ 망원경을 사용해도‍ 은하수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우주의 모든 행성을 볼 수는 없어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비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들은 존재하지만‍ 우리 눈이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있거든요. 많은 바이러스나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아주 멀리 있는 별들처럼요. 이해가 되나요?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천안이라고 부르는 부처의 눈을 사용하는 거죠.‍ 그걸 어떻게 사용할까요?‍‍ 이 눈은 어디 있을까요?‍ 아, 그게 이른바 깨달은‍ 스승들의 의무입니다.‍ 그들은 그 눈을 어디에서‍ 찾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줄 겁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 멀리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을 조정하는 법을‍ 보여주듯이요. 아니면 방법을 알 수 없죠.‍ 여러분도 가지고 있지만‍ 잘 볼 수 없지요?‍‍ 그걸 조정해야 하며 조정하는 방법, 즉 멀리 보이는 조정과‍ 가깝게 보이는 조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천안은‍ 망원경과 같아요. 무한히 멀리 볼 수 있죠. 과거 수십억 생과‍ 미래의 영겁의‍ 생과 우주의 수많은 행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하늘과‍ 땅의 모든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모든 걸 알면‍ 그것이 집처럼 느껴지고‍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주 평범하게 보이죠.‍

이삼일 전에‍ 나의 사촌들이‍ 나를 발견하고 나서‍ 전화해서 이렇게 물었어요.‍ 『세상에!‍ 부처님이 됐는데‍ 왜 말하지 않았어?』‍ 『부처님이 된 후 기분이 어때?‍ 새롭고 다른 것이 있어?』‍‍ 난 말했어요. 『새롭고‍ 다른 건 전혀 없어』‍ 그것에 익숙해집니다. 매일 아기에게‍ 먹을 걸 주면 조금씩‍ 자라는 것처럼요. 그를 안고 있으면‍ 무겁게 느껴지지 않죠. 그러나‍ 멀리서 온 사람은‍ 그를 안았을 때 너무‍ 무겁다고 느낄 겁니다. 예, 익숙해지는 거죠.‍‍

부처가 되는 건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사실 진정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자신이‍ 부처임을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신이‍ 비합리적이라 생각해요?‍ 신이 이렇게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었잖아요.‍ 엄마는 아이를 낳기 위해 아주 많은‍ 고생을 합니다. 엄마는 아기를 세상에‍ 데려오려고 임신한‍ 9개월 열흘 동안 온갖 질병과 피로와 불편함을 견뎌요. 그녀는 출산할 때‍ 큰 고통을 겪는데 그때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죠.‍ 또한, 아이를 낳고 나면‍ 키우는 것도 아주‍ 힘든 일입니다. 아이의 기침 한 번에‍ 엄마는 밤새 잠을‍ 못 잘 수 있어요. 젖니가 나는 고통에‍ 남편과 아내 모두‍ 고생해요. 알겠나요?‍ 그들은 행복하지 않아요.‍ 그 후 그가 자랄 때까지‍ 20년간 양육합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그때 아이는 십 년이나‍ 이십 년 동안‍ 학업에 열중합니다. 그 후 수십 년간‍ 집 밖에서 직장에‍ 몰두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땅속에‍ 묻히게 됩니다.‍ 이게 비합리적인가요?‍‍ 그 밖에 다른 건 없나요?‍ 우리가 이 모든 고생을‍ 견디려고 태어났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우며 부유하고 영광스럽기‍ 위해 태어나야 해요.‍ 우리가 그것을‍ 찾는 법을 모를 뿐입니다.‍ 부자가 되고 아름다운‍ 아내를 얻으며 게임을‍ 하고 즐기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니에요. 그들은 부유하고‍ 행복하며 즐거워야 합니다.‍ 그들의 삶이 행복해야‍ 하며 그래서 더는‍ 갈망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자기 삶을 밝고 안전하게 하려고 놀랄 만큼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보는 법을 모르고 삶을 정리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칙칙하고 어두우며‍ 힘들고 가난하고‍ 편하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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