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번: 『깨달은 이나 깨닫지 못한 이나 대상과 주체를 인식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전자』 즉 깨달은 이에게는 『한 가지 위대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는 그냥 주체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대상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 상태에만 머물죠. 『주체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대상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는다』 멋진 말이에요. 집을 갖고 싶을 때 그냥 갖고 싶어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실제로 집을 사지 않고요. 멋지지 않나요? 그럼 돈을 모아서 선행사가 열릴 때마다 갈 수 있겠죠. 그러니 깨달은 사람도 아마 깨닫지 못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느끼며 똑같은 지식과 감상 태도를 지니고 있을 거예요.
여기 이 우산이 있다고 해보죠. 내가 아주 크게 깨달은 사람이고 여러분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죠. 혹은 반대로 여러분이 매우 깨달았고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봐요. 우리 둘 다 그 우산을 바라보며 그게 아름답다고 느낄 거예요. 그럼 우리 둘 다 똑같은 우산을 사서 같은 값을 치르고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겠죠. 우산이 아름다우니까요. 하나 여기서 차이점이 있어요. 스승(시바 신)은 말하길, 깨달은 사람은 그 우산을 사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내가 우산을 산 건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 되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 우산을 사지 않았으니 여러분이 매우 깨달았다는 뜻이죠. 우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감상하기만 했을 뿐, 소유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충동을 따르지 않은 것이죠. 예를 들면 그래요.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바로 그런 거죠. (네) 참고로 말하면, 이건 내가 산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날 위해 사준 거죠. 깨닫지 못한 이가 깨달은 이를 위해 사준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 앉아 그 우산을 사용하고 있죠.
자, 그(시바 신)의 말 뜻은 이런 거예요.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 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어떤 욕망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온 힘을 다해 쫓을 것이고 때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얻으려고 한다는 거죠. 심지어 자신의 목숨과 영혼, 사업, 이름, 명성, 가족, 그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요. 반면, 깨달은 사람도 똑같은 욕망이 있고, 무언가를 원할지도 모르죠. 아니면 욕망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꽃을 보듯이 그냥 감상하는 것일지도요. 우린 꽃을 보며 『아, 참 아름답다』라고 하죠. 깨닫지 못한 사람은 공공장소에서도 그걸 꺾어 가지려고 해요. 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그저 감상할 뿐, 소유하려는 욕구가 없어요. 이것이 바로 스승(시바 신)이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말한 뜻이죠. 감상과 욕망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제어하거나 대상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아마 깨달은 사람은 자신을 제어할 필요조차 없을 거예요. 대상을 쫓아가려는 욕구 없이 그저 감상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죠. 그게 전부죠. 이해하겠어요? (네) 마치 멋진 남자를 보고 『오, 멋있는 사람이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게 다죠. (네)
그가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냥 거기서 끝이죠. 하지만 어떤 여자는 아주 잘생기고 부유하고 재능 있는 남자를 보면, 그가 기혼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이에 끼어 들려고 하죠. 그러면 우선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고 그다음엔 그 사람의 가족에게도 문제를 안겨주게 되죠. 무슨 말인지 알죠? (네) 그게 유일한 차이점이에요. 그 여자는 설사 자신이 그 남자를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죠. 그저 그 남자가 여러모로 유용하기 때문에 곁에 두려는 것뿐이죠. 그게 다예요. 반면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람이 잘생겼다거나 재능이 많고 부유하다는 걸 알아보긴 하지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요. 그래, 부유하고 잘생겼고 재능도 있구나, 할 뿐이죠. 그냥 그대로 놔두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겠죠. 만일 그 사람이 그나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한다는 등의 말을 건네고, 그 깨달은 사람도 상대방을 사랑하게 됐다면 어쩌면 결혼이나 유대감 같은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나 그녀는 남에게서 그 사람을 빼앗으려 하거나 그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지 않아요. 그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 이상적인 아내로서의 자질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이해하겠어요? (네)
82번: 『각 사람의 의식을 자신의 의식으로 느껴보라. 자신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각각의 존재가 되어보라』 이미 알고 있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명상할 때, 명상하는 사람은 타인의 의식을 마치 자신의 의식인 것처럼 느끼려고 노력해야 해요. 사실 모든 존재는 어차피 하나이니까요.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하니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요. 수행자가 자신의 개별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만물과 일체를 이루고 다른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될 때까지요. 간단하죠? (네) 이해했나요? (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여러분은 말해야 할 땐 안 하는군요. 하루 종일 떠들다가도 정작 말을 해야 할 때에는 입을 다물고 있네요. 만일 이해가 안된다면 말하세요. 다시 설명해 줄게요. 지금 이해가 잘 안되는 이유는 가끔 내 말이 빨라져서 그럴 거예요. 여러분은 아직 이전 문장에 머물러 있는데, 난 벌써 다음으로 넘어가 있는 거죠. 그럼 당연히 혼동될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다른 데서 편한 시간에 영상을 다시 보거나 테이프를 다시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이해가 안 될 땐 그냥 웃어요.
83번: 『무념이 되면 제한된 자아가 무한해지리라』 이미 알고 있죠, 그렇죠? (네, 스승님) 난 웃으라고 했지 고개를 저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시바 신)는 전체 강연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주 어려운 거죠. 하지만 내 생각에 여기서 스승이 의도한 바는 집중하길 원하거나 무념무상에 집중하려 할 땐 아무것도 생각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때 제한된 자아가 무한해질 거예요. 그게 전부예요.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거죠. (네) 선을 신비롭고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그들은 날 못 속여요. 난 알죠.
자, 그럼 84번: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한 존재를 믿으라』 믿으세요. 믿나요? (네) 좋아요. 그럼 85번. 이미 그렇게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85번: 『물에서 파도가 일고, 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우주적인 진동이 우리 안에 있다』 아하. 자, 무슨 뜻이죠? 다들 이해했죠. 그렇죠? 아닌가요? (네) 스승은 이런 뜻일 거예요. 알다시피 파도는 물에서 일죠. 우리가 바다에 가면 파도를 보게 돼요. 그런데 파도는 물처럼 보이지 않죠.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물결이 이리저리 요동치죠. 때로는 아주 거세게 우리 몸을 때리기도 하고 모래를 전부 바다로 휩쓸어 가기도 하고요. 배가 바다 속으로 쓸려 가기도 하죠. 그러니 파도는 아름답고 고요하며 푸르고 시원한 물과는 완전히 달라 보여요. 아주 사납죠. 때론 보기 좋기도 하지만 별로 물 같아 보이지는 않아요. 하얀 거품 같은 포말이 일어나니까요. 마치 폼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모습이죠. 파도는 어디서 나온 거죠? 물에서죠? (네) 그럼 물이 스스로 파도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파도가 생겨나려면 달이 차고 기우는 현상과 지구의 자전이 있어야 해요. (네) 기후나 바람도 파도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죠. 무슨 뜻인지 알죠? (네) 그러니 사실 파도는 물에서 생겨나지만 물과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에 파도가 일어났다고 해서 물을 탓할 수도 없고 반대로 물을 두고 파도를 탓할 수도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결점과 약점 또한 우리 내면에서 비롯되지만 동시에 외부의 영향도 받죠. 그것들은 우리 존재에서 나오지만, 다시 겉으로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조건과 영향이 필요해요. 해서 불교에선 이렇게 말하죠. 『번뇌가 곧 보리요, 보리가 곧 번뇌이다』 장애물은 곧 깨달음이며 깨달음은 곧 장애물이죠. 난 그런 의미로, 그렇게 이해했어요. 하니 자신을 용서하되, 그 나약함에 머물러 있진 마세요. 파도를 넘어 그 중심에 있는 고요한 바다로 들어가세요. 그곳에는 더 이상 파도도 장애물도 그 어떤 것도 없죠.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듯 자기 내면 깊숙이 뛰어들어 고요하고 푸르고 시원한 물, 순수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찾으세요. 그래서 죄는 온 곳이 없고, 아무데서도 오지 않았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미덕이나 죄에 집착해서는 안 돼요. 아름다운 파도이든 아름답지 않은 파도이든 결국은 모두 파도이기 때문이죠. 우린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파도를 탓하거나 물을 탓할 필요가 없고 어느 한쪽에 집착할 필요가 없죠. 『물에서 파도가 일고 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우주적인 진동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이런 뜻이라고 생각해요.
높은 차원의 영적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명상할 때… 그건 세속적인 접근 방식이죠. 우린 자신의 약점과 죄를 무시하고 오직 진정한 자아의 순수함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더 높은 차원에서는 명상할 때마다 의식의 파동을 내면 천국의 선율의 형태로 듣게 되고, 높은 차원의 내면 천국의 빛이 눈부신 광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돼요. 이를 본다는 건 지극히 높으신 분을 보는 거죠. 이것을 듣는다는 것은 신의 소리를 듣는 것이고요. 파도를 보면 바다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알겠어요? (네) 파도를 알면 바다를 아는 거예요. (네) 비록 그 둘의 성질은 다를지라도요. 그러니 『신은 어디에 계시죠? 신을 보고 싶어요. 너무도 신을 보고 싶어요』라고 내게 묻는다면 명상을 통해 내면 천국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겠어요. 그 거룩한 말씀은 신의 속성이고 그 거룩한 빛은 신의 품성이에요. 그러니 여러분이 그것을 내면에서 본다면 여러분도 신이란 걸 아세요. 여러분이 신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게 어디서 왔겠어요? 바다가 아니면 파도는 어디서 왔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네) 알겠죠? (네) 좋아요.
사진: 『신께서 세상을 채색하시듯 우리 삶을 다채롭게 하세요』











